2025 연말정산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 10가지 (해결 팁 정리)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SIGNS: CONNECTING PAST AND FUTURE
이번 전시는 11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자와 상징적 기호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동서양의 조화를 감상하실 수 있도록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 추사 김정희의 서체, 훈민정음 해례본, 그리고 백남준의 작품을 곳곳에 전시하였습니다.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진정한 예술은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고 어디서나 통할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바스키아는 음악, 해부학, 스포츠, 만화,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작품 속 상징과 시각적 언어로 변환하여 다뤘습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왕관, 해골, 해부학 도해 등은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사회적 경험을 드러내는 근본적인 상징이며, 특히 그가 남긴 아티스트 노트북은 낙서가 아니라 언어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실험의 장이었습니다.
바스키아의 회화 속 단어와 알파벳은 매우 단순하면서 완결된 문장이 아닙니다. 이러한 불완전성은 언어에서 시각적 에너지를 발생시킵니다. 이미지와 정보가 끊임없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바스키아의 언어적 실험은 질문을 던집니다. 예술은 무엇이며, 그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바스키아의 예술은 완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읽기 위한 텍스트가 아니라 보고, 듣고, 사유할 어떤 것입니다.
SECTION 1
스트리트를 스튜디오로 THE STUDIO OF THE STREET
미술 작가로 전업하기 전 바스키아는 거리에서 엽서를 팔고, 냉장고, 문, 거울, 버려진 창문 등 일상적인 대상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초기 바스키아 그림의 주제는 왕족, 영웅주의, 그리고 거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거칠고 생생한 에너지를 캔버스로 가져와 강렬한 시각적 언어로 현대 미술계의 중요한 아티스트로서 바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바스키아는 7살 무렵 차 사고를 당해서 비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기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Gray's Anatomy>라는 해부학 책을 선물했습니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에 바스키아는 이 해부학 책을 보는데 빠져들었고, 이 때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들 속에는 인체 해부학적 특징들이 쉽게 눈에 띱니다.
위 그림 "차 사고"는 바스키아가 어린 시절 당했던 차 사고를 그렸습니다.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일로, 그에게 무척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과거 자동차에 치였지만 살아남았던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하단에 적힌 MLK는 우유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MILK(밀크)를 뜻하면서, 동시에 미국인 목사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의 이니셜을 나타내기도 하는 단어 놀이입니다. 어렸을 때 바스키아를 친 차가 바로 우유 트럭이었다고 합니다. 우유는 MILK이고, 우유의 흰 색은 백인을 상징하면서 또 그를 친 우유 트럭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 사고로 인해 그는 병원에 입원했고,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그레이 해부학 책을 주어 그가 인체 그림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니, 어쩌면 이 사고는 그가 훗날 예술가가 되는 촉매 역할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SECTION 2
전사들과 파워 형상 WARRIORS&POWER FIGURES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면 갑자기 전혀 다른 그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딱 봐도 바스키아의 그림과 전혀 다른 동양적인 이 작품이 왜 여기에 있을까요?
바스키아의 전사 형상들은 거칠고 강렬한 붓질 속에서 힘, 고통, 저항과 연약함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이 인물들은 후광이나 왕관과 같은 상징을 지니며 영웅주의, 권력, 희생 등을 표현합니다. 바스키아는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 전사와 영웅의 상징들을 사용하여 현대적이면서 개인적인 맥락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억압과 인종차별을 겪은 흑인들, 특히 흑인 남성들의 저항과 회복력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전사 그림은 한국 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팔을 들어올린 전투적인 자세는 힘과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써 시간과 지역을 초월하여 나타납니다.
이번 전시를 특별하게 하는 한 가지 이유를 말한다면,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문자와 이미지 자체가 전하는 인류 보편적인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스키아가 밝힌 그림의 주제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왕족과 영웅주의'에 어울리는 전사들과 힘있는 영웅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한국의 최영 장군이 그려진 작품이 소개되었습니다.
SECTION 3
해골과 가면들 HEADS AND MASKS
바스키아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 중 하나는 해골과 가면입니다. 바스키아는 아프리카 가면에 매료되었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심오한 상징성과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진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때로 아이티의 부두교 인형이나 아프리카의 은키시(nkisi)*를 연상시키는데, 이들은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들입니다. 바스키아는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맥락 속에 이 형상들을 배치하고, 아프리카 전통을 재해석하여 역사적 의식, 힘, 그리고 저항성을 표현했습니다.
(*은키시: 중서부 아프리카의 전설에 등장하는 존재로, 신성한 에너지가 담겨 영적 보호를 위해 마련된 조각품을 의미한다. 주술사가 못, 날 혹은 철로 된 물체를 조각상에 꽂음으로써 (힘이) 발휘된다.)
그림 속 해골과 가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청년이 겪는 정체성,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나타냅니다. 바스키아는 과감한 색채와 거친 붓질로 소외된 자기 자신을 표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SECTION 4
카툰 CARTOONS
바스키아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만화처럼 장난스럽고 아이들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단순함과 즉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스키아가 만화에 대해 가졌던 관심이 그의 시각 언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불규칙한 그림은 어린 아이의 것처럼 보이며, 휘갈겨 쓴 단어들은 가벼운 즉흥성을 줍니다. 그러나, 그의 인물들은 단순히 어린이의 순수함을 나타내지 않으며, 만화적 언어를 사회적 문제와 연결시키고 권력과 인종차별을 떠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단순화된 형태와 선명한 색채는 어린이의 놀이, 대중적인 광고나 만화의 스타일을 연상시키고, 소비문화를 차용하면서도 동시에 비판하는 팝아트의 특성을 드러냅니다.
SECTION 5
드로잉 IT'S ALL DRAWINGS
바스키아는 약 10년의 기간 동안 1,000점이 넘는 회화와 약 3,000점의 드로잉을 남겼습니다. 그의 드로잉은 거칠고 표현력이 강했고, 즉흥적인 선은 속도감과 리듬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나 종이에 작업을 할 수 있었고, 그림 그리는 것은 그에게 결과물이 아닌 행위 그 자체였습니다. 반복, 낙서, 기호와 단어로 이루어진 드로잉은 그의 예술 언어였습니다.
SECTION 6
단어와 상징 WORDS AND SIGNS
바스키아는 단어의 의미만 아니라 그 소리와 형태까지 사랑하여 책, 시리얼 박스, 신문 등에서 문구를 발췌해 작품에 사용했고, 때로는 글자를 지워서 오히려 그 의미를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작품 속 자주 발견되는 높은 밀도의 단어들의 넘치는 사용은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정보 과잉과도 흡사합니다. 이렇게 구성된 그의 화면은 기호, 단어와 반복되는 상징으로 가득한 시각적 팔림프세스트* 라 할 수 있습니다.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중세시대에 이미 있던 글자를 긁거나 벗겨낸 후 그 위에 재사용한 양피지)
바스키아가 사용한 단어, 기호와 상징들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추사 김정희의 실험과도 공명하여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가 만나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김정희가 쓴 <임군거효령경명, 1856>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SECTIONS 7
단어의 신전 TEMPLE OF WORDS
바스키아의 작품들은 마치 고대 신전의 암호와 상징같은 것들로 가득합니다. 7번 공간에는 바스키아가 1980년~1987년 사이 남긴 공책 8권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두 대문자로 적힌 단어, 반복되는 철자 오류, 낙서같은 드로잉으로 가득한 이 노트들은 그의 예술 세계의 신전과도 같습니다.
노트와 함께 전시된 <무제(Untitled, 1986)>는 단어, 기호와 상징들이 정교하게 얽혀 있으며, 가히 '단어의 신전'이라 불릴만합니다.
고대 한국 미술과 나란히 자리한 그의 작품에는 시간과 문화를 넘어서는 신성한 힘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한글 창제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글자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문자의 조형성과 철학이 있다는 점에서 바스키아의 작업과 결을 같이 합니다.
SECTION 8
숨겨진 상징 HIDDEN SIGNS
바스키아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상징과 기호들이 층층이 쌓여 숨겨진 의미들로 가득합니다. 저작권 기호, 달러 기호, 도장과 그의 상징적인 왕관 기호들은 관객들이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도록 인도합니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단어와 모티프들은 서로 다른 작품들을 보이지 않게 연결시킵니다.
1984년 작품 <엠블럼 Emblem>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처음에 나타난 화면에는 화물 터미널(SCALO MERCI), 사람, 코끼리 등이 보이지만, 블랙라이트가 비추는 순간 보이지 않던 또 하나의 그림이 나타납니다. 그의 시그니처인 해골 형상과 함께 수많은 기호와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들이 드러나며, 작품을 하나의 암호처럼 보이게 합니다. 작품 속 상징과 기호들은 삶의 복합성을 나타냅니다.
참고로 블랙라이트는 30초마다 한번씩 나타나므로, 꺼져 있을 때 그림을 처음 보신 분들은 바로 자리를 뜨지 마시고 조금 더 머무시면 숨겨진 그림을 놓치지 않고 보실 수 있습니다.
SECTION 9
해부학 ANATOMY
1968년 5월 어린 바스키아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팔이 부러지고 비장이 파열되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도록 인체의 교과서인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을 선물했고, 병원에 입원한 한 달 동안 바스키아는 인체 해부도에 빠져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시기는 앞으로의 그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스키아의 스튜디오에는 그레이 해부학 책이 늘 놓여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마치 엑스레이처럼 신체의 단면, 두개골, 척추, 늑골, 근육, 장기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해부학적 단어들도 적혀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정체성, 죽음, 존재의 취약성에 대한 그의 탐구를 보여줍니다.
SECTION 10
바스키아의 아시아 여행 BASQUIAT IN ASIA
바스키아는 1980년대 일본, 태국과 홍콩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에게 아시아는 예술적 언어를 확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접한 한자와 동양적 기호와 상징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바스키아의 기호를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이 섹션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말년에 쓰여진 작품 두 점이 공개되었습니다. 1856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쓴 <학위유종>과 <판전> 두 작품 모두 의도적으로 전통적인 규범을 벗어나 거칠면서도 단순한 필법을 보여주며 문자를 통한 실험적 성격을 띱니다. 바스키아 작품 속 동양적 흔적과 추사의 서체를 함께 보면서 문자와 예술의 접점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SECTION 11
에필로그 EPILOGUE
바스키아 말년에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했는지 죽음에 대한 탐구가 주를 이룹니다. 아프리카 서부 나이지리아 요루바족의 신에 자신을 빗대어 자화상을 그린 <엑수(EXU), 1988>와 해골 위에 올라탄 자신을 그린 <Riding with Death, 1988>가 대표적입니다. 그의 마지막 시기 작품들에는 화면을 가득 채우거나 다 비우는 극단적인 양상이 나타납니다.
1988년 8월 바스키아가 죽기 전 그린 <엑수(EXU)>를 보면 중앙에 서아프리카 토착신앙에 등장하는 요루바족의 신인 트릭스터 엑수 즉 에슈(Eshu)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트릭스터는 장난꾸러기라는 뜻으로, 에슈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장난을 좋아하고 잔인하고 파괴를 일삼는 신입니다. 그림 속 에슈는 이집트 신 아누비스와 닮은 모습으로, 아누비스는 자칼의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에슈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눈들은 이집트 상형문자 또는 이집트의 신 호루스의 눈을 연상시킵니다. 또한, 칼, 창, 활과 화살은 이 존재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담배들은 신 에슈에게 바치는 제물처럼 보이는데, 이는 과거 블랙 노예 무역 시대 흑인들이 당했던 착취를 상징합니다.
전시를 보고난 후 바스키아처럼 각자 자신의 길을 갑니다.
전시장에서 상영되는 인터뷰 영상 속 바스키아의 생전 모습을 보고 앳된 그의 얼굴을 보면,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8년간 뜨거운 불꽃처럼 살다간 장 미셸 바스키아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는 영원히 20대의 젊은 청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지구에 남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최영장군의 그림을 보았을 때 큰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동양적인 그림이 있어 신선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전시장에서 반구대 암각화, 훈민정음, 추사 김정희의 서체를 보면서 문자, 기호, 상징과 이미지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스키아의 기호 체계를 한국 미술과 문화유산 속에서 읽어내어 동서양을 통합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특별한 점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