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연말정산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 10가지 (해결 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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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환급이 작게 나오는 이유는 ‘실수’ 연말정산에서 환급을 크게 줄이는 가장 큰 원인은  알고 보면 단순한 실수 입니다. 특히 2025년에는 공제 구조 일부가 바뀌면서 실수 가능성이 더 커졌습니다. 아래 10가지는 매년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실수이며, 해결 팁까지 담았으니 그대로 따라만 해도 환급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1. 자동 수집 안 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누락 → 월세, 일부 기부금, 교육비 일부, 보약·한약 등 의료비 ✔ 해결: 간소화 서비스에서 ‘미수집 항목’ 리스트 반드시 확인 2. 부양가족 요건 충족했는데 공제 신청 안 함 → 주민등록상 따로 살아도 실제 부양 시 가능 ✔ 해결: 등본 + 가족관계증명서 조합으로 증빙 준비 3. 신용카드 사용액이 25% 미만인데 공제될 거라 오해 ✔ 해결: 연봉의 25% 기준 → 초과 지점 기준으로 체크카드 활용 4. 현금 지출을 현금영수증으로 처리하지 않음 ✔ 해결: 스마트폰 자동 발급 설정 필수 5. 의료비 공제 시 배우자·부양가족 항목을 따로 계산하지 않음 ✔ 해결: 의료비는 ‘본인·부양가족·장애인’ 우선순위로 분리해 확인 6. 기부금 공제 한도를 초과했는데 전액 가능하다고 착각 ✔ 해결: 법정·지정 기부로 나눠 합산한도 체크 7. 월세 공제에서 주소 이전을 늦게 해서 공제 불가 ✔ 해결: 이사 즉시 등본 주소 이전 → 공제 자격 확보 8. 교육비 공제에서 학원비 누락 ✔ 해결: 간소화에 누락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학원 자체 영수증 필수 9. 보험료·연금저축 공제 증빙이 잘못되어 누락 ✔ 해결: 연금저축·IRP 납입확인서는 반드시 연말 정산 전 최신 자료 업데이트 10. 경정청구 가능 사실을 모르고 환급 포기 ✔ 해결: 제출 후 5년 동안 수정 가능 → 누락 시 꼭 경정청구! 결론−누락만 방지해도 환급은 크게 달라진다 2025 연말정산은 공제 항목 변화가 있어 ‘누락 방지’가 가장 확실한 환급 전략입니다. 위 10가지만 정확히 체크하면 환급액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부터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From Impressionism to Early Modernism: Collectors of Light 전시 리뷰

인상주의부터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From Impressionism to Early Modernism: Collectors of Light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The Robert Lehman Collection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귀스트 르누아르 <해변의 사람들>


이번 전시는 리먼 브라더스를 운영했던 필립 리먼과 그의 아들 로버트 리먼이 평생에 걸쳐 모은 예술작품들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1

기간: 2025년 11월 14일 금~2026년 3월 15일 일

(휴관일: 2026년 1월 1일, 2월 17일)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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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모은 이 리먼 컬렉션은 1910년대부터 1969년까지 프랑스 회화 특히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기까지 인상주의와 그 이후 이어지는 미술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1969년 로버트 리먼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970년 2,600여점에 달하는 리먼 컬렉션이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창립 100주년에 기증되었다. 

리먼 가문의 소장품은 유럽을 대표하는 명화를 비롯해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기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회화, 드로잉, 도자기, 장식미술 등 폭넓은 규모를 지닌다. 

로버트 리먼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예술작품들을 감상하는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그가 소장품들을 아낌없이 전시하고 기증한 데에는 이러한 그의 믿음이 있었다.



THE ROBERT LEHMAN COLLECTION


로버트 리먼 컬렉션 한국 전시

이 전시는 총 5부로 나뉘어져 있다. 다섯 공간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더 인간다운 몸

2. 지금의 우리- 초상의 개성

-초상화

-여성을 그린 그림, 여성 화가들의 작품

3. 영원한 순간: 자연에서

4.도시에서 전원으로

-도시, 교외, 전원

5. 물결 속으로


프롤로그: 빛의 여정 The Journey of Light


1부는 인물과 신체를 그린 드로잉으로 시작한다. 


1. 더 인간다운 몸 The Body:More Human More Real


예술가들은 사람의 몸을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도록 연습하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이상적인 몸'을 구현하고자 했다. 서양미술에서 벌거벗은 몸을 뜻하는 누드는 오랫동안 화가들의 실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주제였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과정에서 살아있는 모델을 보고 그리는 것이 중요했지만, 여성은 누드를 보는 것이 부도덕하다고 여겨져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역사나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의 주인공이 대부분 남자였으므로, 모델로 젊고 균형잡힌 남성 모델을 선호했고, 여성 모델은 18세기 후반까지 금지되었다. 

인체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테크닉을 넘어서 예술의 정수를 깨닫는 일이었고, 장차 대형 작품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되는 입문 의례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이런 전통에 대한 반발이 점점 거세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려진 인물은 신화 속 이상적 모습이 아닌, 당시의 현실 속에 존재하던 사람들로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했다.

그 결과, 인간의 몸은 현대적 감각과 예술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수단이 되었다. 20세기 들어 인간의 벗은 몸을 그리는 누드는 아카데미의 규칙에서 더욱 자유로워졌다. 선과 색을 사용하여 다양한 인체를 표현하고, 여성은 그림의 대상이 아니라 누드를 그리는 작가가 됨으로써 누드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확장되었다. 



귀스타브 크루베의 팔을 들어올린 남자

귀스타브 쿠르베의 <팔을 들어올린 남자>에 등장한 남성은 쿠르베 자신일 것으로 추정된다. 쿠르베는 주로 시골 노동자들의 사실적인 삶을 그려왔는데, 이 작품은 그가 작업한 초창기 작품(1840년대)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이 그의 자화상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작품 속 남성의 체형과 머리 모양이 쿠르베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 팔과 상체의 근육을 강조한 자세와 손끝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앙리 마티스의 팔걸이 의자에 앉은 여인


"나는 균형있고, 순수하고, 평온한 미술...

피로한 몸을 쉴 수 있는 좋은 팔걸이 의자와 같은 미술을 꿈꾼다."

-앙리 마티스, 1908년 


목욕하거나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 회화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회화의 주제였다. 특히 호수나 바다 등 자연을 배경으로 인체를 그릴 수 있다는 점은 화가들에게 무척 매력적인 요소였다. 

19세기 들어 인상주의 화가들은 야외에서 수영하거나 여가를 즐기는 프랑스 시민들을 생생한 빛과 자연 속에서 묘사하면서 '목욕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당시 흐름에 맞게 새롭게 해석했다. 야외에서 인체를 그리는 것은 전통적인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빛과 색채를 표현하는 실험의 장이 되었고, 성별·인종·관음증의 시선 등 여러 담론을 형성하며 다양한 변주들을 만들어냈다.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목욕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폴 세잔의 초기작 <목욕하는 여인들(1874)>이다. 이상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여섯 여인의 누드를 그렸다. 여인들은 서있거나 누워있거나 몸을 구부리기도 하면서 각자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잔은 자신의 화풍을 살려 넓고 두꺼운 붓으로 그렸다. 그림 속 여성들의 얼굴을 흐릿하게 표현해 이들이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보는 사람이 상상하게 했다. 



폴 고갱- 목욕하는 타히티 여인들

폴 고갱이 파리를 떠나 남태평양의 신비로운 섬 타히티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것이다. <목욕하는 타히티 여인들(1892년)>은 마치 목욕하는 여인들을 뒤에서 몰래 엿보는 듯한 구도를 취하고 있으며, 여인들의 갈색 피부가 초록색 배경과 대비되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 지금의 우리- 초상의 개성 Portrait and Personality


2부 공간은 크게 초상화와 여성화가들이 그린 작품 두 가지로 나뉜다.


2-1. 초상화

19세기 후반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화가들은 '현대인의 삶'을 새롭게 그리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새롭게 나타난 계층과 직업, 그리고 생활 방식은 도시에 살던 사람들의 일상을 크게 바꿨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계층으로 부상한 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를 원했다. 

원래 초상화는 귀족이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이 시기 화가들은 파리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그렸고, 인물화라는 새로운 영역이 등장했다. 누구를 그리는가보다 이 사람이 어떤 성격과 유형을 보여주는지가 더 중요해졌고, 화가가 지닌 각자의 고유한 양식이 중요해지면서 인물화 속에서도 예술가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게 되었다.



피에르 오귀스트 코-봄

피에르 오귀스트 코가 1873년에 그린 <봄>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그림이다. 고대 신화 속 주인공같은 젊은 연인이 다정하게 그네를 타고 있다. 푸른 수풀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은 1873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되어 대중의 큰 호응을 받았으며 이후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재해석되었다. 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피에르 오귀스트 코는 당시 대중의 취향에 맞는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겨났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이상적 아름다움을 그리는 미술도 공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가에서 바느질하는 여인

<트뤼포 거리가 보이는 창가에서 바느질하는 뷔야르 부인>은 에두아르 뷔야르가 1899년 자신의 어머니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에두아르 뷔야르의 어머니 마리는 재봉사였다. 그는 어머니를 자신의 뮤즈라고 말했고, 실내 장면에서 어머니를 중심인물로 자주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배경은 뷔야르가 1899년부터 9년간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로, 어머니는 거실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집안에는 소시민들이 즐겨 사용하던 일상용품들로 가득하다. 방안을 채운 다양한 천과 무늬들이 눈에 띈다. 



와로키와 함께있는 자화상

1889년 에두아르 뷔야르가 21살에 그린 자화상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뷔야르는 자신을 상징하는 팔레트와 붓을 들고 한가운데에 서 있다. 정면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빛을 받는 부분과 그늘진 부분으로 나뉘며 명암의 대조를 이룬다. 뷔야르보다 흐릿하게 그려진 뒤쪽 인물은 그의 친구 와로키이다. 이 시기 뷔야르는 아카데미에서 배운 양식에서 벗어나 감각적인 상징주의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세상을 감각으로 느낀다.

색채, 형태, 소리- 그 모든 것은 감각의 창을 통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어떤 형상도 혼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다른 것들과 어우러져야만 존재는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에두아르 뷔야르, 1888년 11월 11일 일기에서


2-2. 19세기 프랑스의 여성

19세기 말 프랑스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교육 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작품 속 여성의 모습도 새롭게 그려졌다. 교외 휴양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가족, 안락한 실내 공간과 정원에서의 일상 등 근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다양한 모습이 그림에 담겼다.

이에 더해 여성 화가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당시 여성의 삶을 소재로 섬세한 관찰력과 공감대를 담은 작품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여성화가들은 여성을 전통적인 여성상이나 모성 대신 독립된 인격과 개성을 지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표현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예술계에서 일어난 여성화가들의 약진과 함께 변화하는 사회가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근대적 여성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일조했음을 반영한다. 



분홍색과 검은색 모자를 쓴 소녀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부드러운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90년대에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르누아르는 세련된 모자를 쓴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1891년 르누아르는 <분홍색과 검은색 모자를 쓴 소녀>에서 다채롭고 풍부한 색감을 마음껏 사용했고, 그림 속 소녀의 옆얼굴과 모자의 부드러운 곡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1891년 르누아르는 당시 프랑스 미술부로부터 뤽상부르 미술관에 걸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는 국가가 인상주의를 정식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대한 일이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들은 전통적으로 미술사의 주요한 주제였고, 르누아르는 당시 브루주아 가정의 매력적인 소녀들을 발견하여 이 주제를 활용했다. 1892년 르누아르는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를 그린 네 점의 유화 완성작을 남겼고, 이 작품은 그 중 하나이다. 

다양한 색감을 생동감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표현했고, 섬세한 붓질로 두 인물과 주변환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메리 커셋 <봄;정원에 서 있는 마고>

메리 커셋은 1890년대부터 어린이들을 많이 그렸는데, 아이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을 사랑했던 화가의 시선을 잘 담아냈다. 미국 출신 인상주의 화가였던 커셋은 주로 파리 교외에서 여가활동을 하는 부르주아 가정의 여성들과 소녀들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위 작품은 1900년에 그린 <봄:정원에 서 있는 마고>이다. 이 작품 속 소녀는 마고 뤽스로, 파리 교외에 살던 커셋의 이웃집 소녀였다. 마고는 50점이 넘는 커셋의 작품에 모델로 등장한다.

커셋은 후에 유럽의 인상주의를 미국으로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 새롭게 등장한 부유층 인사들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초상화를 가지기 원했다. 누구를 그렸는가보다 어떻게 그렸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더 많은 사람들의 초상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말- 초상화

"내가 가장 열정을 느끼는 대상은...

바로 초상화, 그것도 현대의 초상화이다....

나는 사진처럼 꼭 닮게 그리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우리의 뜨거운 감정을 표현해,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색채에 대한 지식과 현대적 감각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고 더 강렬하게 드러내려는 것이다."

- 빈센트 반 고흐, 1890년 6월 5일 빌헬미나 반 고흐에게 쓴 편지



키스 반 동겐- 마리아

네덜란드 출신 키스 반 동겐은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하던 자유분방한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07~1910년에 그려진 이 작품 <마리아>에서 그는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여인의 큰 눈매와 검은 눈썹을 강조했다. 그는 선명한 원색으로 검은 눈, 목의 음영을 표현한 초록색과 빨간색 드레스의 대담한 격자무늬를 그려 20세기 초 야수파 화가로서의 특징을 강하게 드러냈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2부 공간을 다 보고 나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물소리, 바람, 새소리, 천둥번개치는 소리 등을 들으며 눈 앞에서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3. 영원한 순간: 자연에서 In Nature: The Eternal Moment


자연은 오랫동안 그림의 대상이었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자체로 무척 중요한 주제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중후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공기의 질이 나빠지자 사람들은 신선한 공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숲과 녹지같은 자연 공간에 대해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또한, 기차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시민들은 도시를 떠나 들판과 숲을 찾아가 휴식을 취했고, 튜브 물감과 이젤같은 도구들이 발명되면서 예술가들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화가들은 자연에서 보고 느낀 풍경을 그대로 그리기보다 감성적이고 개성적인 표현을 더해 그려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어떤 화가들은 더 과감하고 자유롭게 색을 사용해 '야수들'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렇게 화가들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자연과 인간의 감각이 어우러진 개성적인 풍경화를 만들어냈다. 



테오도르 루소- 연못

1830년대 바르비종 인근에서 작업하면서도, 루소는 16세기 프랑수아 1세가 지은 루아르 계곡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샹보르 성의 정원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1839년 그려진 <연못(샹보르 숲의 추억)>에서 연못가에서는 소들이 물을 마시고, 수면에는 소와 나무와 하늘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자연의 풍경을 담은 이 구성은 고요하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3-1. 영원한 풍경의 시간, 바르비종 화파

The Timeless Landscape of the Barbizon School


바르비종 화파는 숲과 자연의 풍경, 빛의 표현, 대기의 움직임 등 자연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으려 노력했던 1세대 화가들이다.

퐁텐블로 숲이라는 프랑스 왕실 사냥터 주변에 있는 바르비종이라는 마을에 모여서 다양한 풍경을 그리며 본격적으로 자연의 빛과 공기의 변화를 화폭에 담기 위해 실험을 했다.

고전주의에서 벗어나 직접 본 자연을 진솔하게 그린 바르비종 화파의 철학은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풍경화로 이어졌다.



쥘 뒤프레- 소 떼가 있는 리무쟁의 풍경

쥘 뒤프레가 1837년 그린 <소 떼가 있는 리무쟁의 풍경>이다. 쥘 뒤프레는 1834년 영국을 여행하면서 영국 풍경화의 거장인 존 콘스터블과 같은 화가의 작품들을 접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회색 구름과 그 아래 흰 구름을 묘사한 방식에서 그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소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작품의 배경인 프랑스 남서부 리무쟁 지역은 목축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자연의 생생한 움직임이 드넓게 펼쳐진 풍경 속에서 어우러지며 깊이있는 공간감을 연출했다. 


3-2. 인상주의 이후의 흐름 Beyond Impressionism


후기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인상주의가 보여준 빛과 색채의 탐구 방식을 계승하면서 등장했다. 인상주의가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 인상을 그림으로 남기고자 한 예술 운동이라면, 후기 인상주의는 그에 더해 화가의 주관적 해석을 가미하여 화가의 개성이 더 강조된 그림 사조이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대표적인 인물은 폴 세잔과 빈센트 반 고흐를 꼽을 수 있다. 세잔은 그림 속에서 형태와 구도의 질서를 잡는 것을, 반 고흐는 강렬한 색채와 특유의 붓질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추구했다.

신인상주의는 후기 인상주의의 한 흐름으로, 과학적 색채이론에 따라 점묘법을 발전시켰다.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는 색을 작은 점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관람자의 눈에서 시각적으로 섞이도록 빛과 색을 재현했다. 앙리 에드몽 크로스는 이 기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해 지중해 풍경을 대담하고 밝은 색채로 그렸다. 그의 실험은 이후 야수파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폴 세잔-후기 인상주의

"우리 눈에 닿은 모든 것은 허물어지고 사라지지 않는가?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우리에게 비치는 모습은 단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 너머에 있는

자연의 영원함을 전율로 담아내야 한다.

그 예술 안에서 영원의 한 조각을 맛보게 해야 한다."

- 폴 세잔



후기 인상주의 별이 있는 풍경 점묘법

앙리 에드몽 크로스는 수채화 작업을 꾸준히 계속했는데, 준비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유화보다 화려한 색채 구성을 더 빠르게 할 수 있었던 수채화에 매력을 느꼈다. 

1905년~1908년에 완성된 <별이 있는 풍경>은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두운 밤하늘을 노란 별빛으로 가득 채웠는데,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지평선 아래로는 청록색 물감으로 길게 뻗은 땅과 멀리 있는 나무들의 윤곽을 아련하게 묘사했다. 



신인상주의 해변의 소나무 점묘법

신인상주의는 후기 인상주의의 하나의 흐름으로 색을 점으로 분해하여 팔레트에서 색을 섞지 않고 캔버스 위에서 색을 찍어서 사람이 멀리서 이 그림을 봤을 때 사람의 눈 속에서 색이 혼합되어 인식되도록 그리는 과학적 색채이론을 기반으로 하였다. 



신인상주의 과수원

1888년 빈센트 반 고흐는 2년여간의 파리 생활을 마치고 프랑스 남부로 향했다. 1888년에 그려진 <꽃피는 과수원> 은 그가 아를에서 그린 첫 연작 중 하나이다. 그는 구불구불 자란 고목에 꽃이 피는 이 지역의 풍경을 유심히 관찰한 뒤 남부의 강렬한 태양을 받은 선명한 색감과 자신만의 붓자국을 전면에 드러내는 표현법에 몰두했다. 나무에 대충 걸쳐놓은 자루낫과 갈퀴는 이 근처에 사람이 있음을 암시한다.


4. 서로 다른 새로움: 도시에서 전원으로 

From City to Country: Inspiration from Contrasts


네번째 전시공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도시, 교외, 그리고 전원(농촌)이다.


당대의 삶을 그리고자 했던 화가들에게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과 그 안의 인간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면밀히 관찰하는 것은 시대의 본질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매우 중요했다. 19세기 중반 대대적인 도시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파리는 유럽을 대표하는 대도시로 변모했다. 넓은 거리와 공원이 조성되었고,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파리의 모습과 시민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파리의 풍경을 그렸다. 철도의 확장으로 도시 밖에서 편히 쉬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교외의 공간, 특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두각을 나타냈다. 도시에서 벗어나 땅과 전원의 풍경을 찾아 나서는 화가들도 있었다.  이렇듯 화가들은 도시의 일상에 더해서 자연의 풍경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하여 다양한 표현을 하게 되었다.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유화 습작

조르주 쇠라는 센강이 있는 섬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파리 시민의 모습을 담은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1884년에 습작했고,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했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31점의 유화 습작과 드로잉을 그렸는데, 이 유화 습작에서는 햇살이 내리쬐는 풍경을 밝게 표현하기 위해 대조를 이루는 색을 강하게 배치했다. 가장 멀리 서있는 여성은 당시 유행하던 버슬 드레스를 입었는데 허리 뒤쪽을 부풀린 드레스의 형상이 잘 드러난다. 



밤나무 길

1878년 알프레드 시슬레가 그린 <밤나무 길>이다. 큰 키에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센강의 굽은 물길을 따라 양쪽 길가에 늘어서 있다. 강어귀에는 작은 배들이 정박해있다. 인상주의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는 파리 서쪽 세브르에서 맑은 날 나무 그늘이 드리운 길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과 지나가는 마차를 어두운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초록색 나뭇잎 사이로 군데군데 찍은 분홍빛 물감은 나무에 꽃이 피었음을 보여주는데, 늦봄이나 초여름에 이 그림이 그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키스 반 동겐의 경마장에서

19세기 이후 '여가활동'이라는 개념이 생긴 프랑스 국민들에게 정원 가꾸기와 더불어 사랑받은 것은 바로 경마였다. 19세기 이후 국민적 여가활동으로 자리잡은 경마는 이후 여러 화가들의 작품에 등장한다. 

키스 반 동겐이 그린 <경마장에서>를 보면, 그림 앞쪽 관람객들이 입은 옷차림에서 이 그림이 1950년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선명하고 강렬한 색조는 경기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 말을 탄 기수들을 보려고 몰려든 관중들의 열기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 작품을 수집한 로버트 리먼은 리먼 브라더스의 자기 사무실에 반 동겐이 그린 다른 경마 그림을 걸어둘 정도로 경마 애호가였다. 



퐁투아즈에서의 수확

인상주의 화가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카미유 피사로는 파리 북서쪽 퐁투아즈에 살면서 그곳의 비옥한 땅에서 감자로 보이는 농산물을 수확하는 전통적인 농촌 풍경을 그렸다. 1881년 <퐁투아즈에서의 수확>에서 피사로는 비탈진 언덕을 화면의 중심에 놓고 선명한 색상을 짧은 붓자국으로 겹겹이 쌓아올리듯 칠해 풍요롭고 햇살 가득한 풍경과 일하는 사람들을 표현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일을 맡고 있는데, 같은 작업이 한없이 되풀이되는 농사일의 특징을 보여준다.



조르주 쇠라-옹플뢰르의 등대

1886년 조르주 쇠라는 외젠 부댕 등 여러 화가가 활동했던 북부 노르망디의 오래된 항구도시 옹플뢰르로 향했다. 그는 이곳에서 작업하며 등대를 그린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1886년작 <옹플뢰르의 등대>에서 해질 무렵 고요한 분위기 속에 방파제의 등대 불빛을 따라 낚싯배 한 척이 돛을 펄럭이며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쇠라는 선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콩테 크레용의 농담을 조절해 형태를 표현했고, 등대 불빛을 강조하기 위해 불투명 수채물감인 구아슈를 하얗게 덧칠했다.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시장 점묘법

조르주 쇠라가 점묘법이라는 혁신적인 기법을 선보인 1886년에 카미유 피사로 역시 점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드로잉에 적용했다. 그는 몇 년 전 퐁투아즈에서 보낸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시골 마을의 시장 풍경을 그렸다. 그는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하고, 농촌 중심의 경제 체제를 선호했다. 

모든 요소가 비슷한 크기의 작은 점으로 완성되는 점묘법은 피사로에게 전통적인 화법을 뒤흔드는 급진적이고 새로운 실험으로 여겨졌다.


5. 거울처럼 비치는 물결 속에서

By the Water: Reflections like a Mirror


프랑스는 나라의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있다. 위(북쪽)로는 영국 해협, 왼쪽으로는 대서양, 그리고 아래(남쪽)로는 지중해를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회색빛 하늘과 바람이 강하게 부는 노르망디 해변이 있고, 남쪽으로는 따뜻하고 햇살 가득한 지중해 해안이 펼쳐져 있다. 프랑스 한가운데를 지나는 센 강은 파리의 심장을 관통하는 중요한 물줄기이며, 많은 화가들이 이 강을 따라 도시와 전원을 오가며 영감을 얻었다. 

기차로 해안 지역을 쉽게 갈 수 있게 되면서 바닷가에는 작은 어촌과 항구들 사이에 해안 휴양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북부 노르망디 해안은 화가들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있는 장소였고, 남부 지중해 연안은 눈부신 햇빛과 산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화가들은 물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빛, 색, 그리고 감각의 세계로 표현했고, 물 위에 반짝이는 햇빛, 흔들리며 부서지는 물결, 빛에 반사되는 풍경 등에서 받은 영감을 다채롭게 표현하기 위해 실험했다. 

(참고- 다섯번째 전시 공간과 마지막 미디어 아트 공간까지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드뷔시의 달빛 듣기



오귀스트 르누아르-노르망디 바르제몽 근처의 바닷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1880년 전후로 몇 년 동안 후원자 폴 베라르의 초청으로 프랑스 북부 해안과 가까운 별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1880년 <노르망디 바르제몽 근처의 바닷가>에서 르누아르의 시선은 가파른 절벽 위에 펼쳐진 황금빛 들판과 아래 지역에 자리잡은 농가, 그리고 그 너머 칼레 해협으로 이어진다. 수평선을 따라 사선으로 내리그으며 하늘의 움직임을 표현했는데, 이는 바람이 많이 부는 이 지역의 특징을 보여준다. 물감을 켜켜이 칠해 절벽 사이로 부서지는 흰 파도의 물결에 생동감을 더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해변의 사람들

1890년 <해변의 사람들>에서 르누아르는 프랑스 남부 바닷가에서 여름날 햇살 가득한 소박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담았다. 프랑스 남부 해안을 가리키는 코트 다쥐르(Côte d'Azur)는 본래 '푸른 해안'이라는 뜻으로, 바닷가를 뜻하는 코트(côte)와 지중해 특유의 푸른 빛깔을 뜻하는 아쥐르(azur)가 합쳐진 단어이다. 

이 작품에서는 하늘, 바다, 땅에 펼쳐진 다양한 푸른 빛이 조화를 이루며 화면 전체에 푸른 해안의 분위기를 가득 채운다. 르누아르는 특유의 활기찬 색감과 섬세한 붓질로 바닷가 풍경을 밝고 부드럽게 그려냈다.



피에르 보나르- 오래된 항구 생트로페의 풍경

피에르 보나르는 1909년부터 10년 동안 프랑스 남부의 바닷가 마을 생트로페를 자주 찾았다. 이 그림은 <오래된 항구 생트로페의 풍경>으로 1911년 여름 폴 시냐크와 함께 있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두 건물 사이 좁은 골목 너머로 보이는 항구의 바다를 마치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구도로 연출했다. 보나르는 짧은 붓질로 생동감있는 색채를 표현했는데, 노랑과 주황색 바탕에 연한 분홍빛을 더한 건물과 푸른색 바다가 대비를 이루어 지중해에 비친 빛으로 그림 전체를 밝혔다.


인상주의 화가 폴 시냐크

"포근히 감싸 안은 황금빛 해안,

작은 해변에 부딪히는 푸른 바다, 나만의 바닷가...

저 멀리에는 푸른 산의 실루엣이 펼쳐져 있어. 평생 그릴 소재가 넘쳐나.

이제야 나의 행복을 찾은 것 같아."

- 폴 시냐크, 1892년 생트로페에서



알베르 마르케- 햇빛을 받는 알제리의 부지 항구

알베르 마르케는 1920년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알제리의 수도 알제를 처음 방문한 이후 여러 번의 겨울을 알제리에서 보냈다. 마르케는 테라스에 이젤을 놓고 창고 지붕들 너머로 펼쳐진 바다와 건너편 산줄기까지 북아프리카의 강렬한 햇빛을 받는 알제리의 부지(오늘날의 베자이아) 항구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1925년 <햇빛을 받는 알제리의 부지 항구>에서 그는 매끄러운 붓질로 형태를 깔끔하게 그리고 붉은 색, 푸른 색, 검은 색, 흰 색, 회색, 그리고 황갈색의 색들을 제한적으로 사용해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앙리 에드몽 크로스- 카프 네그르

1910년 앙리 에드몽 크로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1909년에 그린 마지막 지중해 풍경화 <카프 네그르>이다. 그는 수채화의 효과를 능숙하게 구사해 하늘과 바다에는 옅은 색조를 얇게 칠하고, 앞쪽 나무와 풀밭, 그리고 먼 산에는 보석같이 선명한 색을 두껍게 쌓아 극적인 대비를 이루게 했다. 종이의 흰 바탕을 그대로 남겨 붓질 하나하나를 흰 여백이 감싸도록 표현함으로써 마치 풍경이 빛에 둘러싸인 듯 밝고 산뜻한 인상을 준다.



모리스 드 블라멩크- 샤투에 뜬 배


모리스 드 블라멩크는 파리 북서쪽 센강가에 있는 마을 샤투에 작업실을 마련해 야수파 동료 앙드레 드랭과 함께 사용했다. 

1906년작 <샤투에 뜬 배>를 보면 나무 뒤로 샤투의 여관 건물이 있고, 그림 오른쪽 위에 철교가 있다. 요트의 흰 돛과 여관 건물 위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는 걸 보아 그림 오른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푸른 강물에 짧은 붓질로 주황색, 빨간색, 흰색, 초록색을 덧칠해 수면에 비치는 다양한 색감을 표현하여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햇빛이 비치는 수면

20세기 야수파 화가인 모리스 드 블라맹크는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를 두꺼운 붓으로 칠해 전통적인 원근법 대신 공간감을 표현했다. 

1905년작 <햇빛이 비치는 수면>에서 블라맹크는 그림 전체를 파란 색으로 칠한 뒤, 그 위에 노란색과 흰색을 칠해 수면에 비치는 햇빛을 표현하는 실험적인 방식을 시도했다. 센 강의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과 물에 비친 햇빛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줄지어 늘어선 건물 위 하늘은 물감을 한층 두껍게 칠했다. 제일 앞쪽에는 작은 배가 떠 있고, 그 앞으로 일자로 곧게 뻗은 빨간 색 장대가 화면을 가른다. 


끌로드 모네- 물

"그림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거울처럼 비치는 물이다.

수면에 하늘이 조각조각 비치며 생명이 숨 쉬듯

매 순간 변화하며 살아 움직인다. 흘러가는 구름, 신선한 바람.

서서히 사라지다가도 불현듯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

관찰하는 법을 모르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 모든 것이 물빛을 바꾸고 수면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 클로드 모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다섯번째 전시관까지 다 보고 나면 미디어아트 공간이 나온다. 바로 앞서 본 전시실의 주제인 '물'과 연계된 체험형 공간이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바닷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밀려오는 물결을 볼 수 있게 꾸며졌다. 앞서 본 전시 주제인 물에 충실하게 발밑까지 파도가 치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면 잊지 말라고 하는 듯 로버트 리먼이 남긴 말이 나타난다.


에필로그: 빛의 유산 The Legacy of Light


"위대한 예술은 나만의 기쁨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I believe that important works of art, privately owned, should be beyond one's own private enjoyment and that the public at large should be afforded some means of seeing them."

-로버트 리먼  Robert Lehman


예술을 소유가 아닌 나눔으로 받아들여 이를 실천한 로버트 리먼의 신념과 그의 기증이 지닌 의미를 기억해 달라는 듯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남산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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