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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담장 안, 가을 정원을 걷는 시간-『당신 곁의 한국 정원』신지선 작가님과 함께
정원 연구가 신지선 작가님의 신간 『당신 곁의 한국 정원』 출간 기념으로 진행된 경복궁 정원 투어가 11월 5일 수요일에 경복궁에서 열렸다.
책에서만 만나던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과 철학을 작가와 함께 직접 걸으며 경험할 수 있었다. 경복궁과 관련된 우리 역사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더 유익한 시간이었다. 조선 왕실의 정원에 담긴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정원의 깊은 의미를 발견한 투어였다.
신지선 작가님 소개
정원 문화 기획자이자 정원 연구가인 신지선 작가님은 우리가 평소 제대로 보기 힘들었던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과 철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조경학을 전공하고 정원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오랜 시간 한국의 전통 정원을 연구해온 신 작가는,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이 아닌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서의 정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삶의 철학을 발견하고 기록해왔다.
최근 출간한 『당신 곁의 한국 정원』에서는 경복궁, 창덕궁을 비롯한 궁궐 정원부터 민간의 정원까지, 전국에 있는 한국 정원의 진면목을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정원을 통해 자연을 대하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생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그의 글은, 독자들에게 정원을 보는 새로운 눈을 선물한다.
한국 정원에 대해 더 알기를 원하신다면,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보시기를 권한다.
👉Instagram: [@wolharang](https://www.instagram.com/wolharang)
경복궁(景福宮)
1395년 태조 4년 조선왕조 개국 4년째에 처음으로 세운 으뜸 궁궐이다. '경복(景福)'은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지금의 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도성의 중심에 자리했다.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후, 1610년 창덕궁은 재건하였으나 경복궁은 폐허로 남아 있었다. 1867년 고종 4년에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중건된 경복궁은 왕의 정무공간을 중심부에 두고, 좌우 뒤편으로 왕족의 생활공간과 곳곳에 정원시설들을 배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고, 광화문을 비롯한 일부 청사를 헐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의 정면을 막기도 했다. 1990년부터 복원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의 흥례문과 행각을 복원했고, 왕과 왕비의 침전 및 왕세자가 머문 동궁을 비롯하여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하여 경복궁의 원래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투어 코스: 경복궁 향례문-근정문-근정전-경회루-강녕전-양의문-교태전-함형문(교태전의 서쪽 문)-아미산 화계-건순문-자경전 벽화-향원지·향원정·열상진원-건청궁-집옥재-신무문
흥례문
영제교에서 사진찍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근정문을 통해 근정전으로 향했다. 저 뒤에 보이는 산이 북악산인데, 경복궁 지도를 보면 경복궁 건축물들 위치는 북악산과 관악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는 자리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북악산의 산세와 흥례문의 처마가 하나의 선처럼 연결될 수 있도록 배치에 신경썼다는 점이다.
작가님께서 근정전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셨다. 햇빛을 피하면서 앉아서 볼 수 있는 곳.
작가님께서는 뒤에 보이는 산세가 궁의 처마와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보라고 하셨다.
다음은 강녕전으로 갔다.
강녕전
강녕전은 왕의 침전이자 생활공간이었다. '강녕(康寧)'은 말그대로 편안함을 뜻한다.
왕의 처소이기 때문에 용마루가 없다.
필요에 따라 문을 개방하거나 닫아서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경회루
경회루는 국가의 공식적인 연회나 사신과의 접견 장소로 사용되었다.
경회루 2층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면 이런 광경이었겠구나 상상해본다.
경회루를 보고 나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본격적으로 왕비의 정원을 보러 갈 시간이 되었다.
교태전
교태전은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교태(交泰)'란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라는 뜻이다.
교태전은 왕의 공간인 강녕전의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왕비의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중궁전이기도 하다.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교태전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다. 강녕전과 내부 모습은 비슷하지만, 건물 자체의 규모가 작으며 앞에 월대가 없다.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峨嵋山)이라는 왕비를 위한 후원을 조성하였다. 이곳은 계단식으로 구성된 정원이 있고, 여기에 교태전 온돌방을 지난 연기가 나오는 4개의 아름다운 굴뚝이 있다.
아미산 화계
함형문을 지나 오늘의 주 목적지 중 하나인 아미산으로 간다. 교태전과 함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76년 고종 13년 중건되었다. 경회루를 만들기 위해 판 흙을 가져다 교태전 뒷뜰에 계단식 정원을 만든 것이 아미산 화계이다.
아미산은 인공적으로 만든 동산으로 교태전의 후원에 자리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산이 많아 정원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땅을 파거나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은 정원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 물을 채우고, 파낸 흙으로 산을 만들어 인공 정원을 만들었다.
아미산 화계가 중국의 영향을 얼마나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경회루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나온 흙을 쌓아 만들어졌다.
아미산 굴뚝
왕비의 침전 뒤쪽에 인공으로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가운데 단에 육각형 굴뚝 4개를 나란히 세웠다. 흙을 구워 만든 연한 주황색 벽돌 몸체 위에 기와지붕을 얹고 그 위에 작은 굴뚝을 4개씩 모았다.
몸체에 조각된 여러 무늬들은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봉황은 왕비를, 박쥐는 부귀를, 매화와 국화는 군자의 심성을, 학, 사슴, 불로초, 소나무, 대나무, 돌 등 십장생은 장수를 뜻한다. 정원의 아랫단에는 돌로 만든 그릇인 돌함지와 화분 등이 놓였는데, 함월지는 달이 담긴 호수를, 낙하담은 노을이 비친 연못을 의미한다.
10대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안에서만 살아야 했던 왕비는 바깥 세상의 자연을 볼 수 없었기에 달이 비칠 수 있도록 물이 담긴 그릇과 노을이 비칠 수 있는 연못을 만들어 마음을 달래고자 하였다.
계단식 정원은 산을, 돌함지는 호수를, 굴뚝 무늬는 동식물들의 생태계를 상징하여 아미산 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세계를 상징한다.
장대석으로 석축을 네 단 세웠고, 각 단마다 나무와 화초를 심었다. 아미산의 유래는 중국 사천성에 있는 성이며 도교와 불교의 성지로 알려져 왔다.
아미산 화계에서 특히 보아야 하는 것은 4개의 굴뚝이다.
굴뚝들은 육각형으로 각각 30~31개 단으로 쌓았다. 이 굴뚝들은 교태전 온돌방 밑을 지난 연기가 나가는 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굴뚝들은 1865년 (고종 2년) 경복궁을 재건할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각 굴뚝 표면마다 덩굴, 학, 박쥐,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해태, 불가사리 등 많은 동식물들의 무늬가 조화롭게 새겨져 있다. 이 무늬들은 장수와 부귀를 상징하고, 화재와 악귀를 막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려진 상서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